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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10월07일 21시08분 2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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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 독도 한일공동영유론-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일본의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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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31. 독도 한일공동영유론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일본의 공동영유론


 

■ 연재물에 많은 내용을 담지 못했습니다.
연재물에 일부 내용을 추가하여 새로 작성했습니다.


■ 1963년 1월 오노 반보쿠(大野伴睦, 1890.9.20~1964.5.29) 자민당 부총재가 독도를 한일 양국이 공동소유하자는 제안을 했다.
오노는 홋카이도개발청 장관, 자유당 간사장, 자민당 부총재를 지냈다.
오노의 주장은 한국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려는 방편으로 제안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오노 반보쿠(大野 伴睦)


몇 년 전부터 오노의 독도 한일공동영유론이 한국과 일본에서 시나브로 주장되기 시작했다.

■ 2005년 6월 쓰다주쿠대학(津田塾大學) 다카사키 소지(高崎宗司) 교수는 한국에서 열린 을사조약 100년, 한일조약 40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나는 다케시마가 역사적․국제법적으로도 명백하게 한국 영토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일본영토로 증명되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1905년에 일본이 취한 몇 가지 장치는 부당했다고 생각한다. … 따라서 이곳은 다시 정치적 결단으로 다케시마를 한국에 넘겨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고 주장했다.

■ 오노 반보쿠의 독도공동영유론이 있은 지 30여 년 후인 2005년 세종대 박유하 교수는 일본과 화해를 위해서 독도를 공동영유하자는 주장을 했다.
 “차라리 독도를 양국의 공동영역으로 하면 어떨까. 섬을 둘러싼 영토분쟁을 그렇게 해결한 경우가 실제로 없었던 것도 아니다.… 더구나 독도는 무인도 …
독도를 어느 한쪽이 차지하면서 또다시 수십 년 혹은 더 먼 후대에까지 불화의 불씨를 남겨 놓는 것보다는 서로 양보하면서 공유하는 편이 훨씬 나을 수 있다. 그렇게 독도가 한일간의 평화를 상징하는 '평화의 섬'이 될 수 있다면, 그 날은 한일 양국이 진정한 화해로 가는 길로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디딘 날이 될 것이다.”
박유하(세종대 교수) 『화해를 위해서』 (2005.10.5. 뿌리와이파리)

이 책은 2006년 11월에 일본어로 번역 출판되었고, 2008년 1월 아사히 신문사가 주최하는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수상했다.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은 정치, 경제, 국제관계 분야의 수준 높은 저작물 가운데 해마다 1~2편을 선정하여 주는 상이다.

 
『화해를 위해서』


■ 2006년 12월 현대송(전 도쿄대학 교수, 현 국민대 교수)은 독도를 한일간의 '회색 지대로 삼아 공존의 길을 모색할 것'이라는 주장을 담은 『領土ナショナリズムの誕生―「独島/竹島問題」の政治学』(영토 내셔널리즘의 탄생 : 독도/다케시마 문제의 정치학)을 일본어로 발행했다. 현대송은 이 책으로 마이니치 신문사가 주관하는 아시아태평양상 특별상을 받았다.

■ 2007년 3월 신동아(통권 570호)에 세리타 겐타로(芹田 健太郎, 아이치가쿠인대학 교수)의 글이 실렸다.
이 글은 일본에서 발행되는 『주오고론』(中央公論) 2006년 11월호에 먼저 실렸다.

일본인이 한국인과 화해하기 위해 다케시마를 한국에 양도 혹은 포기하고 한국의 다케시마에 대한 주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일본해 서쪽의 어업자원을 보존하기 위해 한일이 각각 자원관리를 추진할 수 있도록 울릉도와 오키도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를 획정하는 것이 그 골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다케시마를 자연으로 되돌리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자연보호구역으로서 12해리 어업금지수역을 설정하고, 세계 모든 국가의 과학자들에게 이를 개방한다. 한국과 일본이 이와 같은 내용의 조약을 체결하는 것은 해결책으로서 충분히 의미를 갖는다.

한국인에게 1905년은 자국이 일본에 의해 보호국화한 해다. 5년 후 1910년 병합에 이르기 전 단계인 것이다. 다케시마 편입과 식민지 지배는 관계가 없다는 일본 측 주장은 법률적으로는 타당할지 모른다. 그러나 식민지 피지배 역사를 가진 한국인이 ‘자국의 땅에서 최초로 빼앗긴 것이 다케시마’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맞지 않다고 아무리 설득해봐야 좋은 관계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원래 가해자와 피해자의 인식의 격차는 메워지지 않는 법이다.

1965년 맺은 한일협정에서 일본은 어떠한 사죄도 하지 않았다. 지금도 한국 민중 사이에는 일본의 한국통합에 대한 속죄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남아 있다. 다케시마가 한국인에게 일본의 식민 지배 시작의 상징이라면, 새로운 다케시마를 성숙한 한일협력관계의 상징으로 전환해야 한다.

새로운 조약에는 우선 ‘평양선언’과 ‘전후 60년 총리 담화’처럼 솔직하게 한국민에 대해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표명하자. 그런 후에 첫째, 미래 세대를 위해 일본은 다케시마를 한국에 양도 혹은 포기하고 다케시마에 대한 한국의 주권을 인정한다. 둘째, 한국은 울릉도와 오키도를 기점으로 서로 배타적 경제수역의 경계를 획정할 것을 약속한다. 셋째, 동아시아 환경협력의 상징으로서 한국은 다케시마를 자연보호구역으로 삼고 모든 나라의 과학자들에게 개방한다.


'한국의 다케시마에 대한 주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상대적으로 주장되는 '조건'을 보면 한국의 영유권 훼손이라는 문제가 깔려 있다.
'울릉도와 오키섬을 배타적경제수역의 경계로 획정' '12해리 어업금지 수역을 설정하고 세계의 과학자들에게 개방' '다케시마 편입과 식민지 지배는 (독도 문제와) 관계가 없다는 일본 측 주장은 법률적으로 타당할지 모른다' 등이다.

참고글


■ 2008년 8월 29일 <바다와 경제 국회 포럼>(대표의원 강창일)은 독도 문제 해결, 어떻게 할 것이라는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두 가지 주제가 발표되었다. 첫째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도쿄대 명예교수)가 「독도=다케시마 문제 - 해결방안」 둘째는 「학습지도요령 해설서 파문의 본질과 해결의 전망」이다.
와다 하루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독도를 인정하는 것이 일본을 위한 일이고 한일협력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고 일본인을 설득하는 것 이외에 길은 없다. 물론 외교는 50:50이다. Give and Take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일본인이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한다면 시마네현 어민이 독도 주변에서 어업할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한다고 약속해야 한다.


'독도를 한국 땅으로 인정한다'는 주장이 문제없어 보이지만, 독도 주변 해역에서 시마네현 어민의 어업권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일본이 양보하는 대신 한국도 일정 부분 양보하라는 얘기다.

강창일 의원은 '오늘 이 토론회를 통해서 한일 양국이 미래와 국익에 부합하는 건설적이며 창조적인 논의가 전개되기를 바란다. …  독도문제 해결과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해 주제발표와 지정토론에 참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며 와다 하루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정책토론회는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가 주관하고 <동북아역사재단>이 후원했는데,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는 2009년 2월에 메이지대학에서 일본 시민을 상대로 독도공동영유론을 소개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 2009년 2월 21일 일본 메이지대학에서 「독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라는 한일공동 심포지엄이 열렸다.
한국의 <아시아평화와역사교육연대>와 일본의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21>이 공동주최했다.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21> 타와라 요시후미 사무국장(왼쪽), 이신철(오른쪽)

이 자리에서 운영위원장 이신철(현 성균관대 동아시아역사연구소 교수)은 「독도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하여」 라는 주제발표에서 "한국 측에서도 박유하 같은 이는 한국이 양보하여 독도를 한일 공동의 영유권으로 하자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며 마치 박유하의 공동영유론이 일반적인 주장인 듯 소개했다.

그리고 사실상의 공동영유론을 주장하는 와다 하루키의 주장을 ‘전향적인 목표’라고 소개했다. 특히, 와다 하루키의 주장에 대해서는 ‘타당성이나 실현 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만 고집하여 평가하지 말고,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논의를 펼쳐나가기 위한 출발점으로 삼자’라는 주장을 했다.

이신철은 역사학자이고 한국사 교과서 필자이다. 오랫동안 일본 교과서 개악을 반대하는 단체에서 활동했고 박유하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우리 정부와 국민이 독도공동영유론을 수용할 수 없고 다수 의견이 아님을 모른단 말인가?

이신철은 이런 주장도 했다.
"만약에 한국이 제국주의 길을 걷고, 일본이 식민지화의 길을 걸었다면 근대법에 의해 한국 정부가 쓰시마를 영토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다"

만약 심포지엄의 주제가 독도가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였다면 이런 주장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만약에 한국이 제국주의 길을 걷고, 일본이 식민화의 길을 걸었다면 한국군 위안부가 존재했을 수도 있다."

이신철은 역사학자다.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말해야 한다.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을 가상하여 역사를 가정하면 안 된다.
그럼 이신철은 왜 이런 주장을 했을까?
이신철의 발표문이 2008년 8월 29일 <바다와 경제 국회 포럼>의 와다 하루키의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을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으로 쓰시마 할양을 요구한 사실이 배경에 깔려 있다고 보인다.
그런데 이승만 대통령의 쓰시마 할양 요구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배상 요구의 하나였다.
이러한 이신철의 주장은 독도 공동영유론보다 더 위험하다.
독도문제뿐만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야스쿠니 합사, 강제징용·징병 등 해결되지 않은-일본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대일과거사 문제에 면죄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본 측 주최단체인 <어린이와교과서전국네트21>은 발제문에 발표내용 등의 내용을 추가하여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이 책을 본 일본인이 독도공동영유론을 한국의 입장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 2009년 4월 1일 독도의 주권국인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서 일본인에 의해 독도 공동영유론이 제기되었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세계NGO역사포럼> 창립기념 국제심포지엄에서 「동아시아 국제 정세와 역사 갈등, 그 해법은?」이라는 주제 강연을 한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 전 아사히신문 논설 주간)에 의해서다.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세계NGO역사포럼> 창립기념 국제심포지엄(2009.4.1)


와카미야 요시부미는 '한국의 주장이 100% 옳다고 보기 어렵다' '희다고도 검다고도 할 수 없는 회색 영역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 '공동 영유하자'… 며 우리의 입장을 정면에서 부정했다.
와카미야의 주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한국이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여 일본인의 관심을 환기시킨다고 주장했다. 한국이 분노하고 반발하는 이유가 일본에 있다는 사실을 전혀 언급하지 않고 한국에 책임을 전가했다.

양국 간에 가장 어려운 현안은 다케시마 ・독도 영유권 분쟁일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1905년 일본 정부에 의한 다케시마 편입이 한국 병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주장이 100% 옳다고는 보기 어렵다.
즉 냉정히 생각해 보면 희다고도 검다고도 할 수 없는 회색 영역이 상당 부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일본의 영유권 주장을 지금도 영토 확장의 야욕을 갖고 있어서 그런 것처럼 과도하게 반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한 감정적인 반발이 일본의 내셔널리즘을 자극하여 일본 국민이 거의 신경 쓰지 않던 다케시마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킨다는 점도 알아야 한다.
나는 가능하다면 이 섬을 한일의 공동 영유로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하면 21세기적인 역사의 화해와 영토분쟁을 극복하는 선진적인 사례로서 세계에 자랑할 수 있다. 그리고 양국이 이 섬이 세계유산으로 등록될 수 있도록 공동 신청하면 어떨까 하는 꿈을 가져보기도 한다.


와카미야 요시부미는 '1905년 일본 정부에 의해 다케시마 편입은 한국 병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것이 분명하다.'라면서 '한국의 주장이 100% 옳다고 보기 어렵다. (독도 문제 해결은) 한일의 공동 영유로 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했다.
한마디로 독도는 한국 영토가 아니라 한국의 영토일 수도 일본의 영토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와카미야 요시부미의 발표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전에 원고를 받고 한국어로 번역까지 했기 때문이다.
<동북아역사재단> 나아가 <교육과학기술부>는 와카미야 요시부미가 어떤 주장을 하는지 알면서도 강연을 강행했다.
동북아역사재단은 대한민국 국민의 세금으로 설립·운영되고, 이사장은 교육과학기술부(현 교육부) 장관의 제청으로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한다. <세계NGO역사포럼>은 <동북아역사재단>이 세계역사NGO대회 운영을 위해 설립한 단체로 예산 대부분은 우리 국민의 세금이다. 
<세계NGO역사포럼>을 주최했지만 사실상 <동북아역사재단>의 행사다. 나아가 교육과학기술부, 대통령의 행사이기도 하다.

동북아역사재단 로고


2013년 1월 동서대(총장 장제국)는 와카미야 요시부미를 석좌교수로 임명했다. 와카미야 요시부미는 3월부터 일반대학원 일본지역연구과에서 강의하고 있다.
장 총장은 헤럴드경제와 인터뷰에서 “오랜 기간 국내외 취재현장에서 쌓았던 귀중한 경험들을 전수해 동서대 학생들에게 글로벌 감각과 균형적인 시각을 갖도록 하기 위해 초빙했다”며 “이번 석좌교수 위촉을 계기로 보다 미래 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해 나가는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석좌 교수 임명에 대해 말했다.
 

2013년 3월 21일 동서대에서 특강을 하는 와카미야 요시부미, DSUNews캡춰


■ 2013년 3월 22일 와다 하루키의 영토 문제 해결 방안이 담긴 『동북아시아의 영토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대립에서 대화로』(사계절출판사)라는 책이 번역·출판되었다. 이 책에서 와다 하루키는 이렇게 주장했다.
와다 하루키도 와카미야 요시부미 같이 일본이 독도영유권 주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다케시마(독도)가 '일본의 고유영토'이고, 한국의 지배는 '불법 점거'라고 주장하는 것은 도의(道義)라고는 전혀 없는 행동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 한국이 실효지배하는 독도=다케시마에 대한 주권 주장을 일본이 단념하는 것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 이 결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

그러나 독도 문제의 원인, 현실,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한국의 기본 입장을 정면에서 부정하고 있다.

독도=다케시마문제, 센카쿠=댜오위다오 문제는 모두 거주민이 없는 절해의 무인도의 문제다. … (독도문제는) 역사적 근거로 해결되지 않는다. … 고유영토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한 상대국의 지배를 '불법점거', 나아가 '침략'리라고 부르게 되고, 군사적 수단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 국제사법재판소의 제소를 한국이 거부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한국의 독도 지배의 부당성을 일방적으로 표출하는 모양새가 되어 오히려 대립이 격화되는 효과밖에 없다. …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독도=다케시마는 일본이 1905년 1월 이래로 1945년 8월 15일까지 40년 동안 이 섬을 영유했다는 점 … 한일 양 국민의 이해(利害)의 조화를 이루기 위해 독도=다케시마 주변 해역의 어업에 시마네현 어민이 참가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과 독도가 한국령이지만 이 바위섬을 경제수역의 기점으로 하지 않음을 합의해야 할 것이다.

와다 하루키의 주장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모순되는 점이 한둘이 아니다.
하나만 예로 들면 1877년의 태정관의 '다케시마(독도) 외 1도는 우리나라와 관계없는 것임을 알아 둘 것'이라는 지령문이다.
와다는 지령문을 소개하면 이렇게 주장했다.
(태정관은) 울릉도와 다케시마(독도)를 하나로 파악하고, 이 2도는 조선의 영토라는 심증을 굳혀 일본영토가 아니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일본은 조선과의 영토 획정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와다 하루키는 태정관 지령문으로 한일간의 영토획정이 이루어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독도 문제의 해결은 간단하다.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독도 영유권 주장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와다 하루키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포기를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와 반성의 표현으로 일본은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한다.'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

와다 하루키에게 독도의 역사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재 한일 양국이 갈등하고 있는 현실만 있을 뿐이다.
와다 하루키와 같은 역사 인식으로 독도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오히려 독도 문제를 어렵게 할 뿐이다.
 

일본인에 의한 독도 한일공동영유론은 표면적으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는 듯이 보이지만 해결방안이나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면 한국의 주장을 교묘히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일공동영유론은 한국이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일본의 주장>이며,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 2013년 10월 1일 파주에서 열린 제8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에서 와다 하루키가 기조 강연을 했다.
이 행사는 문화관광부가 후원했다.
와다 하루키는 독도문제를 쿠릴열도 문제 해결의 3대원칙에 따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쿠릴열도는 독도와 전혀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와다 하루키가 쿠릴열도 문제 해결방안을 독도 문제에 적용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기 때문이다.
 

제8회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에서 기조강연하는 와다 하루키(2013.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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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한일공동영유론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비판하는 듯하면서 한국의 주장을 교묘히 부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독도 한일공동영유론은 한국이 독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현실을 타개하기 위한 <일본에 의한, 일본을 위한, 일본의 주장>이며,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훼손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와다 하루키, 세리타 겐타로, 와카미야 요시부미는 한국의 언론, 학계, 정치권, 정부기관 등이 '친한파' 또는 '진보적' 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진보적이지 않다.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결여되어 있다.
오로지 독도를 실질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한국을 상대로 영토문제를 제기하는 도전국 일본의 국민일뿐이다.

시마네현이 설립한 죽도문제연구회 회장 시모조 마사오(타쿠쇼쿠대학 교수)는 철저히 일본의 입장에서 독도 문제를 얘기한다.
시모조 마사오가 칼을 휘두르기 때문에 우리는 적절히 대응할 수가 있다.
그러나 와다 하루키 등은 등에 비수를 감추고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격이다. 이들이 시모조 마사오보다 더 위험한 이유이다.

문제는 독도 한일공동영유론이 국내 언론 및 국내 관련 단체가 주최하는 심포지엄, 토론회 등을 통해 아무런 비판없이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 큰 문제는 독도의 국제법적 지위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정부 기관이 이런 행사를 후원하거나 재정적 지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유가 뭘까?
독도문제를 고민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민하지 않는 이유는 독도문제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안타깝고 부끄럽지만,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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