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누구를 위한 기념관인가 - 독도수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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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누구를 위한 기념관인가
국가에 의한 독도역사 왜곡과 폭력을 기념하는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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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7일 울릉도에서 독도의용수비대기념관 문을 열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기념사를 김관용 경상북도 지사가 축사했다.
 
기념관은 2005년에 제정된 독도의용수비대지원법에 따라 건립되었다. 울릉도 천부 석포마을 일대 2만5천 제곱미터에 지상 2층 건물, 상설전시실, 기획전시실, 1950년대 독도모형, 영상실, 체험관으로 구성되었고, 야외에 독도전망대와 호국광장이 조성되었다. 건립비용 129억은 모두 국고에서 지원되었다.
 
기념관 건립의 주요 목적은 독도의용수비대의 국토수호 정신 계승과 공훈 선양이다. 전시관에는 독도의용수비대가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3년 8개월 동안 33명이 활동한 것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가장 환영해야 할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서기종 회장은 "독도의용수비대 역사는 물론 대원 각각의 인생 이력을 날조하여 고향 사람은 물론 전 국민에게 알리려 한다"며 분노를 감추지 않고 있다.
 
 
 
■ 국가에 의한 독도의용수비대 역사 왜곡 
 
▲ 1996년 4월 청와대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훈장을 전달했다.
독도의용수비대를 정의하는 "3년 8개월, 33명"은 1996년 4월 1일 국무회의에서 영예수여의안이 통과되고, 김영삼 대통령이 청와대에 초청해 서훈하면서부터 공인되었다. 이때는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고 말할 정도로 독도문제가 한일간의 주요 외교 문제로 다뤄지고 있을 때였다.
 
 
▲ 1996년 작성한 공적조서 '53.4~56.12 까지 3년 8개월간 일본의 침입으로부터 독도를 수호' '푸른독도 가꾸기 운동'이 33명에게 동일하게 적용된 공적 내용이다.
 
서훈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공적이 확인되어야 했지만, 서훈 과정에서 공적 확인 절차는 없었다. 2007년 4월, 감사원은 국가보훈처를 피감기관으로 1966년 서훈 과정을 감사하고 결과를 발표했다. 
 
"구 상훈법 제2조의 규정에 따르면 훈장 및 포장은 대한민국에 뚜렷한 공적을 세운 자에게 수여하고, 같은 법 제5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2조 제3항의 규정에 따르면 서훈의 추천은 원‧부‧처‧청의 장 등이 공적심사위원회의 공적심사를 거쳐 서훈 예정일 30일 전에 공적조서를 첨부하여 총무처 장관에게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정부포상지침에 따르면 포상추천자의 공적내용 등에 대하여 반드시 현장조사 및 사실조사를 하여 공적 내용의 진실성 등은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도 위 관서에서는 1996년 서훈 당시 서훈대상자에 대한 개별 면담, 현장 조사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공적심사위원회의 공적심사도 거치지 않고 ○○○이 1984년 경 생계보호 청원시 제출한 활동‧조직현황 등 서면자료만을 조사한 후 공적조서를 작성하여 서훈을 추천하는 등 제대로 심사를 하지 않고 훈장을 수여하였다."
 
서기종(현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회장) 대원은 서훈 당일 아침 국가보훈처 경주지청장이 '훈장 받으러 가시는데 제가 모시겠다'는 말을 듣고 서훈 사실을 알게 되었다. 1996년 서훈은 서훈 당사자도 모른 채 일사천리로 추진된 것이다.
 
서훈 때 공적 내용은 반드시 확인되어야 하고, 절차에 따라 공적이 확인된 때에만 서훈할 수 있다. 또한, 이중 서훈을 할 수 없다. 그런데 국가보훈처는 1966년에 훈장을 받은 11명을 추가로 서훈했다. 
 
국가보훈처는 11명을 추가 서훈하기 위해 허위로 '푸른 독도 가꾸기 활동'을 공적에 포함했다. 그러나 감사원은 대원들이 '푸른 독도 가꾸기 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3년 8개월, 33명 활동"을 증명하는 객관적인 기록은 없다. 유일한 근거는 절차를 무시하고 작성된 공적조서뿐이다.
 
 
■ 국가보훈처, '독도'를 홈페이지 금지어로 등록
▲ 국가인권위원회 공문 국가보훈처는 '독도' 를 홈페이지에 등록할 수 없는 금지어로 등록했고, 국가인권위위원회는 '적절'하지 않다는 결론은 내렸다.
2005년 8월 16일 독도의용수비대 생존 대원과 유족으로 구성된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는 국가보훈처를 방문했다.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기간이 왜곡되어 있고, 33명 가운데 절반이 가짜라며 진상규명을 요구했다.
 
국가보훈처는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이후 각 대원의 병적기록, 경찰관 근무기록, 외무부 독도문제 개론, 경상북도 경찰국 조사보고서 등 관련 자료를 근거로 제시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명백한 반증이 없다'라며 진상규명 요구를 무시하고, 법을 어기면서 추진된 1996년 서훈 과정의 정당성만 주장했다.
 
이에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글을 올리자, 국가보훈처는 '독도'를 금지어로 등록해 대한민국 국민 누구도 국가보훈처 홈페이지에 '독도'라는 글을 쓸 수 없게 했다.
 
2008년 5월 9일 국가인권위원회는 독도를 금지어로 설정한 것은 '조사대상 인권 침해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반 국민들도 독도 등의 표현을 등록하지 못하게 한 것은 적절한 자유게시판 운영이라고 판단되지 않는다'라며 국가보훈처에 권고했다. 
 
 
■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낸 대한민국
 
1996년에 작성된 공적 조서는 33명 모두가 1953년 4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독도의용수비대원으로 활동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때 33명은 울릉도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33명 각각의 군 입대와 전역, 경찰관 근무 기록을 볼 때 불가능하다.
 
서기종 대원은 1948년 6월 27일 국방경비대원 입대, 군 복무 중이던 1953년 6월 25일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1954년 8월 1일에 전역했다. 이규현 대원은 1952년 6월 9일에 입대, 휴전회담이 마무리될 무렵 백마고지에서 부상을 입고 1953년 11월 20일에 전역했다. 몇몇 대원은 독도의용수비대가 창설되었다는 20일 바로 며칠 전에 입대했다.
 
김영호 대원은 1953년 4월 18일에 입대하고 1954년 3월 5일 전역, 김용근 대원은 1953년 4월 16일 입대하고 1954년 2월 25일 전역, 김재두 대원은 1953년 4월 16일 입대하고 1954년 3월 27일 전역했다.
 
장을 받고, 1954년 8월 1일 전역했다. 1953년 4월 부터 전역일까지 독도는 물론 울릉도에 있지 않았다.
 
 
1954년 7월, 대한민국 정부는 일본의 순시선의 불법 침범에 대응하기 위해 독도경비를 강화키로 했다. 8월에는 울릉경찰서 경찰관을 상주시키기 위해 동도 정상에 독도 경비 초사를 건립했다.
 
▲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 막사(1956년 5월 28일 촬영) 울릉경찰서 경찰관이 상주하기 위해 울릉경찰서에서 1954년 8월 동도 정상에 건립했다. 이때 공사 책임자는 고 박춘환 경사였다. 1955년 1월부터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가 상주하며 독도경비를 담당했다. 고 김산리(울릉경찰서 경찰관)제공
 
 
울릉경찰서는 상주 경비 병력을 충원하기 위해 1954년 12월 31일자로 독도의용수비대대원 9명을 특채했다. 1955년부터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가 독도의용수비대를 대신해 독도경비를 담당하기 시작했다. 경찰이 되지 못한 대원들은 상인군인회 회원으로 서도에 상주하며 미역을 채취했다. 
 
▲ 정원도 대원의 울릉경찰서 경찰관 임명장 임명날짜가 1954년 12월 31일이다. 9명이 울릉경찰서 경찰관으로 특채되면서 독도의용수비대는 해산했고, 1955년 부터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원으로 독도 경비를 담담했다.
 
 
정원도 대원은 1956년 1월 30일, 서기종 대원은 1956년 4월 23일, 이상국 대원은 1956년 10월 9일 경찰관을 그만두었다. 나머지 7명의 대원은 10년 이상 경찰관으로 근무했다.
 
국가보훈처는 울릉경찰서 독도경비대원으로 독도에 상주했던 9명이 1955년 1월부터 1956년 12월까지 독도의용수비대로 활동했다며 각 대원의 경찰 근무 경력을 부정하고 있다.
 
 
■ 진실을 감추는 국가보훈처
 
▲ 독도의용수비대 연구배경 및 연구내용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가 연구의뢰했고, 독도의용수비대 활동기간은 1954년 4월부터 12월까지 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국가보훈처와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는 연구 결과를 묵인.은폐했다.

국가보훈처는 독도의용수비대지원법에 따라 2008년에 독도의용수비대기념사업회를 설립하고 운영비와 사업비를 지원하고 있다. 기념사업회의 주요 사업 가운데 하나가 기념관 건립이다. 2013년 4월 독도의용수비대 활동 기간을 재정립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실시했다.
 
연구책임자는 국내 최고의 독도 전문가로 알려진 국방대 김병렬 교수가 맡았다. 김병렬 수는 2005년 청와대 소속으로 설립된 바른역사정립기획단의 초대 독도팀장을 맡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독도연설문을 기초했다. 
 
연구원으로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홍성근 연구원(전 독도연구소장), 기념사업회 이용원 부회장 그리고 필자가 참여했다. 회의는 동북아역사재단 회의실에서 이루어졌다.
 
병적기록, 경찰인사기록, 외무부 발행 독도문제개론, 경상북도 경찰국 조사보고서 등 국가기록, 의용수비대원과 전 울릉경찰서 경찰관의 증언, 당시 한일 양국의 언론보도 등을 종합검토했다.
 
2013년 7월 연구팀은 독도의용수비대 창설시기를 1954년 4월 해산 시기를 1954년 12월까지 8개월 동안 활동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국내 최고의 독도전문가로 알려진 김병렬 교수와 독도의용수비대 홍순칠 대장의 조카인 홍성근도 활동기간이 3년 8개월이 아닌 8개월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2000년부터 독도의용수비대를 연구한 필자는 처음부터 8개월을 주장했었다. 그러나 기념사업회 이용원 부회장은 8개월이라는 결론에 동의하지 않았다. 연구팀은 최종 보고서를 기념사업회에 제출했다.
 
2014년 국가보훈처 기념사업과에 연구 결과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문의했다. 그러나 국가보훈처는 연구용역 실시 사실은 물론 보고서의 존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는 보고서를 전달하고 기념관 건립 시에 반영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 독도가 아닌 인권의 문제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헌법 제10조다.
 
1996년 대한민국 정부는 독도의용수비대원 각각의 인생 이력을 붕어빵 찍어내듯이 획일화하고, 실제 인물이 아닌 가공의 인물로 만들었다. 국가보훈처, 교육부, 동북아역사재단, 해양수산부, 독립기념관 등 공공기관은 수십 년 동안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거짓 인생을 살게 하면서 한 개인의 행복을 짓밟았다. 거짓 삶을 살아야 했던 대원들의 눈물어린 호소는 철저히 무시되었다.
 
영원히 떠날 수 없는 고향 울릉도에 독도의용수비대 기념관이 문을 열었다. 주인공인 독도의용수비대동지회 서기종 회장은 초청장도 받지 못했다.
 
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은 개관식에 참석해 기념사를 했다. 누구를 위한 기념관이고 기념사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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