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7일 국제사법재판소(ICJ)는 페루와 칠레 간의 해양경계 분쟁사건에 대하여 최종 판결을 하였다. 페루는 양국 간 해양경계가 존재하지 않는다며 경계획정 협상을 요구했으나, 칠레는 1950년대 이전 조약들에 의해 이미 해양경계가 존재한다며 협상을 거부했었다. 그러자 페루는 2008년 1월 16일 해양경계획정을 구하는 소를 제기하였고, ICJ는 소 제기 후 약 6년이 지나서야 최종 판결을 내놓은 것이다.
본 사건의 핵심 쟁점 중 하나는 양국 간에 해양경계가 존재하는지 여부였다. 특히 1952년 칠레·에콰도르·페루 3국이 채택한 산티아고 선언이 내용상 법적 구속력을 가진 조약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이 선언이 해양경계에 관한 합의까지 포함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첨예한 다툼이 있었다. 이에 대해 ICJ는 이 선언이 해양경계를 정한 것은 아니라고 결정하였다. 하지만 ICJ는 1940~1950년대 초 당시 양국 간에 위도선을 따르는 해양경계에 대해‘묵시적 합의’(tacit agreement)가 있었고, 1954년 협정이 이러한 합의를 공고히 했다(cemented)고 판단하였다.
ICJ는 이렇게 위도선을 따르는 해양경계가 육지 경계지점부터 80해리 지점(지도 A지점)까지 이어진다고 보았다. ICJ가 해안에서 80해리까지만 해양경계 합의가 있었다고 본 이유는 당시 어업활동의 범위, 국가들의 실행 및 해양법에 관한 국제법위원회의 작업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어 ICJ는 A지점부터 칠레 해안에서 200해리에 이르는 지점(지도 B지점)까지는 오늘날 해양경계획정의 일반원칙으로 자리 잡은 잠정등거리선 설정,관련 사정 고려 및 반비례성 심사라는 3단계 방법을 따랐다. 결국 ICJ는 고려할 만한 관련 사정이 없고 비례성도 충족한다고 판단하여 등거리선을 경계로 확정하였다. 마지막으로 B지점부터 페루 해안에서 200해리와 만나는 지점(지도 C지점)까지는 칠레의 200해리 외측 한계선을 따라 경계를 획정하였다.
이번 판결은 해양경계획정에 관한 3단계 방법론이 이제는 확립된 원칙임을 시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러나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이번 판결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ICJ가 페루와 칠레 간에 1950년대 이전 해양경계를 획정한 조약은 없다고 하면서도, 그에 대한‘묵시적 합의’는 있었다는 다소 모호한 결정을 하였다는 점이다. 판결문에는 해양경계를 정한‘묵시적합의’의 법적 성질과 그 내용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다. 다른 하나는 ICJ가 위도선을 따르는 묵시적 합의에 의한 해양경계가 80해리까지만 있었다고 하면서도, 그에 대한 충분한 판단근거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해양경계의 외측 한계를 왜 80해리로 판단하였는지에 대해 비록 당시 어업활동과 국가 실행을 언급하고 있긴 하지만 그
내용이 지나치게 간단하여 충분한 설득력을 갖기가 어렵다.
■ 미래전략연구본부 박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