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혁명 초간단 해설[42]《똥》
연탄불 갈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밭에 나가서 오줌 싸고,
창문 커튼 치고, 혹시 도둑이 들지 몰라 문단속하고,
아이들(고양이) 두 놈 머리 쓰다듬어주며
잘 자라고 인사한 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우면
한 몇 분 동안은 참 묘한 느낌이 듭니다.
「내일 아침, 내가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혹시 이 밤이 마지막 밤은 아닐까?」이런 느낌.
아, 나에게도 끝내 그 순간(!)이 다가오고야 마는구나!
또 하나는, 그날 한 일이 무엇이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는 데요,
힘든 노동으로 땀을 많이 흘린 날일 수록 이불을 덮고 누웠을 때의 느낌이
참 포근하고 안락한데, 하릴없이 빈둥거린 날은 어딘지 모르게 찝찝해서
하루를 마감하고 결산하는 느낌이 아주 불쾌하다는 겁니다.
『이봐, 강봄! 그건 강박증이야! 일종의 정신질환이라구!
자랑할 게 전혀 아니라니까! 다른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 하나도 없어요!』
누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굳이 변명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강박증을 버리지도 않겠습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그냥 간직하고 살겠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내 집 안에서 구린내가 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똥 냄새는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지독해져 갔는데
가만히 관찰해 보니 화장실에서 똥을 눈 뒤 물을 내리고 나면
어김없이 그 냄새가 진동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냄새의 원인을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노가다를 하면서 정화조와 변기 설치를 수도 없이 해봤기 때문에
똥에 관해서는 그 구조가 내 머릿속에 자세하게 그려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이 냄새는 정화조가 똥으로 꽉 찼다는 뜻이고
정화조를 풀 시기가 한참이나 지났는데도 푸지 않아서
냄새가 역행하여 올라오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웃집 형님 말이
이 집에 먼저 살던 사람이 15년 전에 정화조를 묻은 뒤
한 번도 푼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집에는 차가 들어올 수가 없어서
정화조를 푸고 싶어도 풀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고 무슨 수를 쓰든 퍼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곰곰 생각하다가
일단 똥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곳까지 들어오고
호스를 여러 개 더 이으면 될 것도 같아서 △△환경에 전화를 했습니다.
『사장님! 돈은 깍지 않고 원하는 대로 다 드릴 테니, 꼭 좀 퍼 주세요!』
그랬더니 일단 한번 와서 보겠다면서 금방 승용차를 몰고 오더라구요.
그런데 내 집 정화조를 보자마자 이 사장이 하는 말이
『이 정화조는 헬리콥터 아니면 못 퍼요.』
그렇게 한마디 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걍 내빼더라구요. 참, 씨펄...
그러니, 이거 큰일 아닙니까!
똥 한 번 쌀 때마다 집 안 구석구석 퍼지는 이 냄새를 어떻게 할 거며
예쁜 여자 손님이라도 오면 난리 나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하나...며칠 고민하던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내 손으로 퍼야 한다.』였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 외엔 다른 방법이 없더라구요.
철물점에 갔더니 아직도 똥 푸는 바가지를 팔고 있었고
플라스틱 페인트 통도 두 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는 삽으로 밭을 파서 넓고 깊은 웅덩이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바가지가 안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똥이 쌓이고 쌓이다 못해 딱딱하게 굳어서 힘껏 밀어 넣어도
바가지가 안 들어갈 정도로 똥이 굳어 있었습니다.
할 수 없이 삽으로 몇 삽 떠낸 뒤 그 작은 웅덩이에 물을 붓고
긴 장대로 뒤적거려서 몇 바가지 퍼낸 뒤에 또 물을 부어서 젓고.
15년 묵은똥이라 그런지 냄새가 참 예술이더라구요.
이 똥을 다 내가 싼 똥이라면 좀 덜했을 텐데
거의 다 남의 똥이라고 생각하니 냄새가 더 지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 데다가 웅덩이에 똥을 쏟을 때마다 내 몸에까지 똥물이 튀었고
혹시 그 똥물이 눈으로 튈까 무서워 마스크에 보안경까지 쓰고 똥을 펐는데
자세가 나오지 않는 데다가 냄새 때문에 호흡마저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힘은 몇 배로 들고 땀이 비오듯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그날 밤,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웠는데
갑자기 몸이 붕~ 뜨는 듯한 이상한 느낌이 들더라구요.
어! 왜 그러지? 이게 무슨 현상이지?
한참 뒤에나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아, 오늘 똥을 퍼서 그렇구나, 하는 것을.
그리고 날아갈 듯한 그 상쾌한 느낌은
그 뒤로도 한 일주일간 계속 되더라구요.
그러면서 어떤 사람이 쓴 인도여행기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습니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기차를 탔는데 정말이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사람이 꽉 차서 불편한데도 텅 빈곳이 있었는데
화장실 앞이었습니다.
행색이 남루해서 꼭 거지 같은 사람도 화장실 앞에는 앉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이 냄새나는 그 화장실 앞에 가서 앉았더니
갑자기 가슴에서 어떤 현상이 일었는데, 그 현상이 어떤 것이었는지는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상상하는 재미를 위해
자세하게 쓰지는 않겠습니다.
그렇게 똥을 펐더니 그 즉시 냄새가 뚝 그쳤고
그래서 이젠 예쁜 여자 손님이 와도 되는데
올 만한 여자가 없네요.
내가, 나의 마지막 밤을
똥을 푼 그날처럼 맞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2017년. 4월. 12일.
민중혁명이 온다. 강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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